고천문기록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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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가능 기간 : 삼국시대 ~ 조선시대 (BC 37 ~ AD 1910)
고천문기록 검색결과
전체개수 21,803건
페이지 1,130/2,181
| 번호 | 양력날짜 음력날짜 |
일진 | 천문현상 |
|---|---|---|---|
| 10,513 |
1491년
1월
4일
1490년 11월 24일 |
임인 | 전한(典翰) 김응기(金應箕)와 응교(應敎) 조지서(趙之瑞)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23일 일경(一更)에 허성(虛星)의 궤도에 약간의 빛이 있는 별의 동쪽을 향해 갔는데, 뻗치는 빛이 4, 5척(尺) 남짓하였습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68면] |
| 10,512 |
1491년
1월
5일
1490년 11월 25일 |
계묘 | 김응기(金應箕)·조지서(趙之瑞)가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약간의 빛이 있는 별이 위성(危星)의 궤도로 옮겨 들어갔고, 또다시 유성(流星)이 소병(小甁)과 같은 모양으로 꼬리 길이가 2, 3척(尺) 남짓한 것이 삼성(參星)의 궤도에서 나와 유성(柳星)의 궤도로 들어가서 없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68면] |
| 10,511 |
1491년
1월
6일
1490년 11월 26일 |
갑진 | 김응기(金應箕)·조지서(趙之瑞)가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 일경(一更)에는 구름이 꽉 끼었으므로, 그 별이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여 있는 곳의 궤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이경(二更) 이점(二點)에는 유성(流星)이 남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구름이 꽉 끼어서 출입(出入)한 별의 궤도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하기를, “내가 보기로는 유성(流星)이 없는 밤은 없다. 만약 길흉(吉凶) 관계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모양과 빛깔로 점쳐야 할 것인데, 지금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유성이라고만 말하고 크기와 모양과 빛깔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또 있는 곳을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렇게 하고서도 천문(天文)을 본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승정원(承政院)이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도승지(都承旨) 신종호(申從濩) 등이 서계(書啓)하기를,“한 가지의 운물(雲物)에 이상이 있거나 한 가지의 성문(星文)에 변화만 있어도 임금은 마땅히 두려워하여 몸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어 그것이 없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니, 그래서 점후관(占候官)을 설립(設立)하게 된 것입니다. 다섯 위성(緯星)이 하늘에서 운행(運行)함은 상도(常度)가 있는데, 비류(飛流)하는 별에 대해서는 전문(前文)에 갖추어 기록하였으니, 이는 변이(變異)를 기록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 등이 비록 감석술(甘石術)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상(天象)을 관찰해 보면 유성(流星)이 없는 밤이 없는 것은 진실로 성상(聖上)의 하교(下敎)와 같습니다. 그런데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아뢸 때마다 각 경(更)에 일이 없었다고 하였으니, 그 성심껏 관찰하지 않은 것이 이와 같습니다. 전사(前史)에서 유성에 대한 것을 기록함에 있어서는 시작한 곳과 간 곳의 분야(分野)와 모양·빛깔이 어떠했었는지를 갖추어 기록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 감응(感應)의 소재(所在)와 감응의 지속(遲速)과 대소(大小)에 대한 것을 점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관(星官) 등이 아뢴 것은 조금도 그러헤 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매우 그 맡은 바 직무(職務)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청컨대 관상감의 제조로 하여금 엄하게 규찰하게 하소서.'' [조선실록 [원전] 11집 668면] |
| 10,510 |
1491년
1월
6일
1490년 11월 26일 |
갑진 | 김응기(金應箕)·조지서(趙之瑞)가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 일경(一更)에는 구름이 꽉 끼었으므로, 그 별이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여 있는 곳의 궤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이경(二更) 이점(二點)에는 유성(流星)이 남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구름이 꽉 끼어서 출입(出入)한 별의 궤도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하기를, “내가 보기로는 유성(流星)이 없는 밤은 없다. 만약 길흉(吉凶) 관계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모양과 빛깔로 점쳐야 할 것인데, 지금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유성이라고만 말하고 크기와 모양과 빛깔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또 있는 곳을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렇게 하고서도 천문(天文)을 본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승정원(承政院)이 의견은 어떠한가?” [조선실록 [원전] 11집 668면] |
| 10,509 |
1491년
1월
9일
1490년 11월 29일 |
정미 | 전한(典翰) 김응기(金應箕)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어젯밤에 혜성(彗星)이 위성(危星) 11도(度)로 옮겨 갔는데,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76도 반이었으며, 빛의 길이는 1장(丈) 남짓하였습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69면] |
| 10,508 |
1491년
11월
20일
1491년 10월 19일 |
임술 | 유성(流星)이 나타났다. [조선실록 [원전] 12집 105면] |
| 10,507 |
1491년
2월
9일
1491년 1월 1일 |
무인 | 혜성(彗星)이 천창성(天倉星) 동쪽에 옮겨 가 있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9면] |
| 10,506 |
1491년
2월
11일
1491년 1월 3일 |
경진 | 혜성(彗星)이 없어졌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9면] |
| 10,505 |
1491년
2월
16일
1491년 1월 8일 |
을유 | 유성(流星)이 천원성(天園星)에서 나와 천창성(天倉星) 서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이 주먹과 같았고, 길이가 2, 3척 가량되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81면] |
| 10,504 |
1491년
3월
4일
1491년 1월 24일 |
신축 | 유성(流星)이 좌기성(左旗星)에서 나와 고기성(鼓旗星)의 위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이 주먹과 같고, 꼬리의 길이가 4, 5척(尺)쯤 되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8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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