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문기록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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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가능 기간 : 삼국시대 ~ 조선시대 (BC 37 ~ AD 1910)
고천문기록 검색결과
전체개수 21,803건
페이지 1,127/2,181
| 번호 | 양력날짜 음력날짜 |
일진 | 천문현상 |
|---|---|---|---|
| 10,543 |
1491년
1월
15일
1490년 12월 6일 |
계축 | 김응기(金應箕) 등에게 전교(傳敎)하기를, “어젯밤에 나도 혜성(彗星)을 관망(觀望)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다. 달빛이 밝게 비치고 금성(金星)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가? 그대들은 어떻게 보았는가? 그리고 내외(內外)의 관상감(觀象監)에서 아뢴 것은 혹은 3, 4척(尺), 혹은 2, 3척(尺)이라고 하여 본 것이 같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아울러 자세히 물어서 아뢰라.” 하니, 김응기 등이 대답하기를, “달빛이 환하게 비칠 적에는 그냥 보면 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달빛을 가리고, 자세히 보아야만 볼 수가 있습니다.” 하고, 내외 관상감에서는 아울러 아뢰기를, “유성(流星)의 광망(光芒)이 빠르기 때문에 잠깐 사이에는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 등이 본 것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1면] |
| 10,542 |
1491년
1월
16일
1490년 12월 7일 |
갑인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실성(室星) 궤도 안 운우성(雲雨星) 동쪽 제 1성(星)의 남쪽으로 3, 4척(尺) 남짓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하기를, “이경(二更)에 유성(流星)이 삼성(參星)의 좌견(左肩)에서 나와 천측성(天側星) 아래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3, 4척 남짓하였으며, 사경(四更) 삼점(三點)에는 유성(流星)이 섭제성(攝提星)에서 나와 천기성(天紀星) 동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큰 배[梨]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2, 3척 남짓하였으며, 사점(四點)에는 유성이 관색성(貫索星)에서 나와 개양성(죒陽星)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3, 4척 남짓하였으며, 오경(五更)에는 유성이 관색성에서 나와 천시성(天市星)의 동원(東垣)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2, 3척 남짓하였습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2면] |
| 10,541 |
1491년
1월
16일
1490년 12월 7일 |
갑인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실성(室星) 궤도 안 운우성(雲雨星) 동쪽 제 1성(星)의 남쪽으로 3, 4척(尺) 남짓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하기를, “이경(二更)에 유성(流星)이 삼성(參星)의 좌견(左肩)에서 나와 천측성(天側星) 아래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3, 4척 남짓하였으며, 사경(四更) 삼점(三點)에는 유성(流星)이 섭제성(攝提星)에서 나와 천기성(天紀星) 동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큰 배[梨]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2, 3척 남짓하였으며, 사점(四點)에는 유성이 관색성(貫索星)에서 나와 개양성(죒陽星)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3, 4척 남짓하였으며, 오경(五更)에는 유성이 관색성에서 나와 천시성(天市星)의 동원(東垣)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2, 3척 남짓하였습니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2면] |
| 10,540 |
1491년
1월
17일
1490년 12월 8일 |
을묘 | 12월 을묘(8)에 별이 천시(天市)의 서원(西垣)에 나타나 차사(車肆)를 지나서 시루(市婁)에 있었고 또 동원(東垣)으로부터 천창(天倉)에 닿았는데 다음해 정월 계미(6)에야 사라졌다. [증보문헌비고 상위고 6, 318면] |
| 10,539 |
1491년
1월
17일
1490년 12월 8일 |
을묘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벽성(壁星) 남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書啓)하기를, “삼경(三更)에 유성(流星)이 정성(井星)의 궤도 수위성(水位星) 아래에서 나와 장성(長星) 북쪽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꼬리의 길이는 3, 4척 남짓하였습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2면] |
| 10,538 |
1491년
1월
17일
1490년 12월 8일 |
을묘 | 12월 을묘일(8)에 별이 천시(天市)의 서원(西垣)에 나타나서 거사(車肆)를 지나서 시루(市婁)에 있다가 또 동원(東垣)으로부터 천창(天倉)에 닿았더니 이듬해 정월 계미일(6)에 비로소 사라졌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 15권 천문전고 93면] |
| 10,537 |
1491년
1월
18일
1490년 12월 9일 |
병진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벽성(壁星) 남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하기를, “밤 이경(二更)에 혜성이 벽성 남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별이 들어간 곳만 말하고 그 별의 길이와 넓이는 말하지 않았는데, 보지 않고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니, 김응기 등이 대답하기를, “그 별이 달과 거리가 가까왔고 금성(金星)이 곁에 있었으며 빛을 발산하였으므로 다만 약간의 광망(光芒)만 있을 뿐이고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으므로, 감히 서계(書啓)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4면] |
| 10,536 |
1491년
1월
20일
1490년 12월 11일 |
무오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누벽성(壘壁星)과 천혼성(天턎星)의 사이로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하기를, “밤 일경(一更)에, 혜성이 누벽성과 천혼성 사이에 옮겨 갔고, 유성(流星)이 천선성(天船星)에서 나와 실성(室星) 위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먹만 하였고, 길이는 3, 4척(尺) 남짓하였습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5면] |
| 10,535 |
1491년
1월
21일
1490년 12월 12일 |
기미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천창(天倉) 서쪽 제 1성(星) 위로 옮겨 갔습니다.” 하고, 관상감(觀象監)에서 서계하기를, “밤 일경(一更)에 혜성이 천창(天倉) 서쪽 제 1성 위로 옮겨 갔고, 유성(流星)은 천선성(天船星)에서 나와 누벽성(壘壁星) 위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큰 배만 하였고, 길이는 2, 3척이었습니다.” 하였는데, 전교(傳敎)하기를, “달빛이 퍼지고 금성(金星)이 곁에 있었으므로, 그 별의 광망(光芒)은 비록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대체로 볼 적에 점점 사라지던가, 아니면 점점 길어진던가? 그리고 관상감에서 아뢰기를, ‘형혹성(熒惑星)이 궤도를 잃었습니다.’고 하였었는데, 지금은 곧 물러갔다고 하니, 물러가면 기뻐할 만하다. 그러나 그 물러간 것은 어느쪽을 가리키는가? 김응기와 관상감에게 물어보라.” 하였다. 김응기 등이 아뢰기를, “달빛이 퍼져서 다만 혜성의 대체만 보았을 뿐이고, 그 사라지고 길어짐은 자세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관상감에서 아뢰기를, “형혹성이 지금은 이미 물러갔습니다. 다만 황도(黃道)에 이르지 아니하였을 뿐입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5면] |
| 10,534 |
1491년
1월
22일
1490년 12월 13일 |
경신 | 김응기(金應箕)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지난밤에 혜성(彗星)이 천창성(天創星) 서쪽 제 2성(星)의 서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11집 67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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